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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런던 2 .
2. 버킹검의 희망과 절망 신 상 성 (소설가. 용인대 명예교수) 버킹 검 궁 옆의 캔싱 턴 궁 둘레에 싸인 애도 꽃송이들은 다이애나를 사랑하는 영국인들 뿐만 아니라, 미국 등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을 아직도 안스럽게 흔들고 있다. 이 가을의 코스모스마냥 갈걍스런 다이애나의 긴 목이 연상되는 계절에 다시금 그미가 거닐던 버킹 검과 캔싱턴 궁 그리고 로얄 파크의 오리 궁둥이가 생각난다. 21세기 과연, 영국은 저녁에 지는 석양인가, 다시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인가. 미국의 큰집으로서, 유럽의 맏형으로서의 옛 영광이 재현될 것인가. 영국을 상징하는 그림엽서 같은 것에 제일 먼저 나오는 엘리자벳 여왕의 궁전은 영국인들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버킹검Buckinghum 궁전에는 늘 많은 사람들로 넘늘거린다. 런던에 오면 이 병정놀이를 보아야만 영국에 왔다는 확인이라도 하듯이 많은 관광객들이 가들막거린다. 남녀노소에다 흑-백-홍-황색 인종들이 눈빛이 인종박물관 같다. 곰비임비로 몰려드는 인파들을 정리하느라고 기마대들이 관광객들에게 말머리를 함부로 들이 밀었다. 좋은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몰려 다니는 관광데모대(?)들은 기마대들과의 숨바꼭질로 또다른 진풍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바로 내 옆에서 비디오 카메라를 열심히 돌리고 있는 반바지의 노 신사는 자기의 시커면 가운뎃 다리가 흘러나오는 것도 모르고 앵글을 흔들어댔다. 그의 앵글 속에는 말 오줌이 수돗물 마냥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그 시커먼 말 불알과 누런 오줌 그리고 그 말 잔등에 의젓하게 올라탄 붉은 유니폼의 여성 기마병의 모습에 열중하느라고 정작 자기의 물건이 8월 뙤약볕에 녹아나오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같다. 그 옆에 있는 소년이 자기 어머니에게 손가락으로 자꾸 그것을 가리켰지만 그 부인은 모른 척하고 말 오줌이 흘러서 우리들 쪽으로 올 것인지 방향을 바꿀 것인지 불안하게 그 끄트머리만 주시하고 있었다. 관중들 한복판에서, 아스팔트 위에서 더구나 여왕의 궁전 정문을 쳐다보며 쉬!를 하는 백마에게 그 여성 기병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침착하게 말의 잔등을 가볍게 또닥거려 주었다. ---괜찮아 자기야! 뭐, 쉬 마려우면 누어야지, 사람들은 공중변소가 있지만 늬네들은 없쟎니? 그래애, 씨원하니, 뭣하면 똥까지 싸렴, 뭐, 어떠니 이왕 베린몸, 내가 깜빡하고 오늘 아침 네 소변을 챙겨주지 않고 나왔지 뭐니? 미안하다, 미안해, 엊저녁 위스키가 좀 과했나? 하고 자기 애마하고 속삭이는 것같다. 그 말은 알았다는 듯이 말 꼬리를 더욱 높이 흔들어대었다. 그 광경을 보며 주변에서 킥킥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정문을 보고 소리쳤다. 거의 1시간을 기다려서야 근위병의 행진이 나왔다. 군악대를 앞세운 행렬은 얼굴이 근엄하다 못해 굳어져 있어서 장례식 행렬 같았다. 여우비 같은 부슬비까지 배끗거려서 그렇게 비치는 것일까?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그 이미지를 깨달았다. 혈색 좋고 키가 큰 서양인들의 행렬이 먼저 나오고, 누렇게 뜬 얼굴에 키가 작은 동양인들이 뒤이어 행진해 나왔다. 유니폼도 붉은색 상의에 흰 가죽띠 그리고 검은 곰의 모피가죽 털모자를 쓴 빛나는 서양인 근위병과 녹색 상의에 깃털도 없는 모자를 쓴 동양인은 누구일까? 어떻게 보면 하인이나 죄수들을 뒤에 달고 가는 느낌조차 주는 동양인들은 과연 누구이며 하필이면 그들을 왜 그렇게 눈에 띄게 대조적인 행색으로 만들어 굳이 근위병 연대에 왜 끼워놓았는지 모르겠다. 분명, 황색 인종인 그들은 식민지령인 홍콩인 들일까? 하필이면 하나같이 난쟁이 같은 키들만 골라왔을까. 아직도 대영제국의 허세를 과시하려는 것일까, 과거 해상왕국 시절, 그들의 주요 무역품목 가운데는 노예와 아편도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노예는 미국으로, 아편은 중국으로 내다 팔았다. 그것이 훗날 미국 <남북전쟁>의 씨앗이 되었으며, 중국과의 <아편전쟁> 빌미가 된 것이다. 런던을 중심으로 도시 빈민층을 이루고 있는 흑인들의 절망과 슬픔은 아직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흑인들의 고통은 어디 영국뿐이랴, 유럽 전역 내지는 미주 전역에 잡죄어 있다. 정작 볼만한 교대 식은 궁전 안 뜨락에서 이미 끝난 상태이고 우리는 1 시간 여를 기다렸으나 바깥에서 껍데기만 구경한 셈이다. 그나마 처녀가 탄 말 불알을 관광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이 골목대장 병정놀이를 평생에 한번 보기 위해 새벽부터 도시락을 싸들고 와서 기다리는 시골 노인들을 보니 그래도 위안이 된다. 새벽부터 진을 치고 있는 보통사람들은 밖으로 내몰고, 독일인 듯한 단체 관광객들은 늦게 도착했는데도 궁전 안으로 들어가는 쪽문을 열어주었다. 그 대열 뒤를 어느 배낭족 남녀두 명이 재빨리 따라붙자 쪽문 경비가 가슴을 떠밀고는 철문을 닫았다. 어디에나 돈이 왕이다. 돈만 있으면 대우, 없으면 괄시다. 유럽 전역에서 <마르크>의 위력은 실감난다. 달러는 해당 국가에 따라서 환전을 해야 하지만, 마르크는 어디 가든 대개가 통용이 되며 동구권 국가에 가면 달러보다 더 좋아한다. 영국 파운드의 지.엔.피보다 거의 두배가 넘는 마르크의 가치는 독일을 우러러 보게 하고 있으며 유럽 관광객들의 대부분이 독일인들이다. 황색인종으로서는 물론 일본인들이 휩쓸고 다닌다. 다 돈 많은 나라들의 위세가 아닌가. 대영 제국의 상징인 엘리자벳 2세 여왕의 궁전 앞에서도 돈치기의 현실은 냉혹하게 나타나는가 보다. 그 정문 앞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기념비가 서 있다.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이 버킹검으로 이주해 온 이래 근대사의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이곳에서 기획되었다. 국내적으로는 자유 민주주의의 첫걸음인 제1차 처치스트 운동이 시작되었고, 국외적으로는 부국강병 책을 썼다. 아편전쟁으로 중국의 홍콩을, 그 다음으로 캐나다, 인도,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를 차례대로 손아귀에 넣었으며, 제1-2차 세계대전도 지휘했다. 그러나 이제는 식민지들이 차례로 독립을 하고 남아프리카 마저 만델라의 부각과 함께 손털고 일어서야 했다. 그나마, 최근에는 강철나비 대처 여 수상에 의한 1982년의 포클랜드 전쟁 승리로 대영제국의 위신을 간신히 지켜왔다. 그러나 지금 21세기를 목전에 둔, 버킹검의 운명은 E.C의 가입을 앞두고 자존심까지 상해 있다. 유럽통화가 실현되면 사실상 독일의 콜 수상이 주도권을 잡게 된다. 독일의 경제력은 이미 세계 최강국이다. 앞으로 갈수록 영국과 독일의 돈 지갑 두께는 더욱 대조가 된다. 근위병 교대 식에도 독일인이라면 옆구리 문을 살짝 열어주어야 하는 현실이다. 금년으로 만 160년의 버킹검 역사가 이제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국민들조차 황실제도를 폐지하라는 주먹질이 딱히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비와의 이혼 때문이 아닌 경제력 부담문제이다. 황금빛 천사를 머리에 이고 있는 빅토리아 여왕의 콧구멍에 카메라를 대고 아까의 반바지 노신사가 비디오를 돌리고 있다. 그는 그 콧구멍에 허옇게 더깨가 낀 코딱지같은 비둘기 똥에 앵글을 맞추며 곁에 있는 마누라에게 농담을 했다. 말소리를 들어보니 그도 역시 아까의 단체 관광객 마냥 독일인이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아까의 소년은 영국인인지도 모른다. 혹시나 하고 둘러보니 와글거리는 군중들 속에서 빨간 스카프를 갈걍스런 목에 휘날리며 그 여인이 제임스 공원 쪽으로 바삐 가고 있는 게 보인다. 그 소년도 깡총거리며 뒤따르고 있다. 그미는 진작부터 이 독일인 할아버지의 무례한 행동을 굳이 못 본 척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히 일개 졸부가 이 신사의 나라 영국에 와서 뇌꼴스런 짓을 하다니! 나잇살로 보아 2차대전 당시 패전군 독일 히틀러 군대 병정으로서 처칠 사령관의 파이프 담배 아래에서 핏빛 기침이나 하고 목숨구걸을 했을 영감이 이제 돈좀 만졌다고 무례한 짓을 하는 꼴이라니 흐흥! 하는 소리가 스카프에서 냉갈령하게 들리는 것도 같다. 군중들은 약속이나 한 것같이 제임스 공원 쪽으로 큰 물줄기를 이루며 흘러갔다. 나도 그 흐름에 끼어 갔다. 왕실 공원답게 드넓은 잔디 위에는 점심 먹는 가족들, 갖가지 자세로 끌어안고 있는 연인들, 웃통을 벗고 축구하는 젊은이들, 겨드랑이 털을 자랑하며 주무시는 아저씨들 등 자유와 평화의 숲이다. 이 곳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이다. 그 곁의 인공호수에는 백조며 펠리칸이 무리를 지어 마주오며 인간들 모습 어떻다고 떠들어 대었다. 해마다 가을, 펠리칸이 새끼를 깔 때쯤 되면 머릿수를 세는 왕실 요리사의 전통행사도 관광항목에 들어간다고 했다. 펠리칸 요리는 왕족과 초청된 귀족들만 잡숫는 고급요리라고 했던가. 공원을 가로질러 빅토리아 역으로 갔다. 하룻동안의 자유이용권One day travel card를 자동판매기에서 뽑았다. 전 구역을 다닐 수 있는 것이 3파운드 10펜스(약 4천5백원) 밤 자정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마음대로 탈 수 있다. 그러나 교통비가 비싸다. 런던은 뉴욕, 도쿄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곳이다. 역 구내 짐 보관소에 가서 배낭을 억지로 집어넣고 2층의 맥도날드로 올라가서 점심을 요기했다. 외국에 나오면 왜 그렇게 배가 고픈지 모르겠다. 평소에 잘 안 먹는 밀가루 음식이지만 이곳에선 씹지도 안고 목구멍에 넘어간다. 씹어 삼키기에 너무나 아깝다. 유럽 전역 어디에 가나 맥도날드가 있다. 그 간판만 보면 반갑다. 우선 값이 싸고 확실하다는 것, 그리고 대개 관광지이거나 중심가라는 것이다. 어정쩡한 식당에서 몇 번 바가지를 쓰거나, 위험 지역에서 헤매다가 보면 맥도날드 간판이 늘 안내 역할과 휴식을 주곤 했다. 그것은 뒤집어 놓고 보면 맥도날드의 고급한 상술이다. 어디든 그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면서 특유한 빵맛을 유지한다는 점, 값이 일정하고 표기가 분명하다는 점, 번화가의 중심이라는 점 등이다. 맥도날드와 코카콜라의 지점이 들어간 나라는 유엔 회원국 보다 많다고 하니 미국인들의 상술도 중국인이나 유태인 또는 일본인보다 결코 빠지는 게 아니다. 맥도날드 한 세트를 게 눈 감추듯이 삼키고, 그 앞의 싱가폴 식당에서 비빔밥 비슷한 것을 또 한 접시 소 눈 감듯이 잡숫고 <런던 탑>으로 갔다. 지하철 시내 지도에는 탑 언덕Tower Hill으로 나와 있었다. 런던 탑은 파란만장한 피비린내의 탑이다. 왕궁이었던 곳이 사형장이 되었으며 지금은 그러한 역사를 되새겨 보는 박물관이 되어 있다. 왕비와 충신들이 처형된 자리에 세계적인 다이아몬드를 갖다 놓고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사실상의 왕조가 시작되는 노르망의 윌리엄 왕(1066-87) 1세가 영국을 정복한 이후, 1078년 왕궁으로 건립한 이곳은 17세기까지 증개축을 반복하여 오늘날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중세의 대표적 성채로서 템즈강의 북안에 접해 있다. 종탑, 녹색 탑, 핏빛 탑, 반역자의 문 등이 있으며 벽에는 처형을 사형수들의 피맺힌 낙서가 섬뜩하다. 이중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뺑 둘러 참호가 있었으나 지금은 물이 없어졌다. 한복판에 흰 탑White Tower이 있는데 흰색인데다가 해마다 템즈 강물로 씻기 때문에 화이트란 별명으로 불린다. 중간탑Middle을 통해 런던 탑으로 들어서면 종탑이 왼쪽에 나오는데 엘리자 벳 1세와 <유토피아>의 작가 토머스 모어Thomas More가 갇혀 있던 곳이다. 오른쪽에는 토머스 탑이 있는데 템즈 강이 수로로 쓰였을 때는 이곳으로 웨스트 민스터에서 판결을 받은 죄수들이 반역자의 문으로 해서 끌려오던 현관이었다. 조금 돌아가면 핏빛 문이 나오는데 에드워드 5세와 요크 공 그리고 롤리 경이 처형된 곳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정권에 대한 탐욕은 동서고금이 비슷한가 보다. 여기서 곧바로 나가면 왕관과 왕홀이 전시되어 있다. 그 왕홀에는 530캐럿 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데 ‘위대한 아프리카의 별’이라고 불리는 세계 최대의 것이다. 역대 왕 가운데 가장 탐욕스런 헨리 8세가 만든 무기고에는 세계 각 나라의 무기가 수집되어 있기도 하다. 영국 왕조의 중심은 윌리엄 1세를 이어 받은 헨리 1세(1100-35)가 오락가락하다가 헨리 8세1509-47)까지 이어졌다. 다시 에드워드 8세(1936.윈저 공)까지 연결되다가 지금의 엘리자 벳(1952~) 2세에 이르기까지 집안끼리 피투성이의 왕조 계승이었다. 올곧은 신하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가 캐서린 왕비를 버리고 일개 궁녀였던 앤 불린Anne Boleyn과 결혼하려 하자 결사 반대했다. 그로인해 왕의 눈밖에 난데다가 로마 교황의 대법관이었던 그는 카톨릭과의 관계를 끊고 종교혁명을 단행하여 국교회를 새로 창설하려는 헨리 정책에 저항하다가 결국 반역죄로 몰려 1535년 단두대로 떠났다. 이듬해에는 헨리 8세가 두 번째 왕비 앤 불린도 아침이슬로 보냈으며 6명의 왕비 가운데 두 명을 처형시킨 곳도 이곳 런던 탑이었다. 앤 불린의 몸에서 나온 엘리자 벳 1세와 이복 형제 메리 1세도 한때 이곳에 갇히는 운명이었으나 엘리자 벳은 나중에 여왕이 되어 중세의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엘리자 벳 1세는 탐험가이며 문학가인 롤리Sir Walter Raleigh 경을 사랑하기도 하였으나 그도 반역죄로 처혀당하고 마는 한 많은 런던 탑이다. 앤 불린이 장희빈 같다면 토머스 모어는 김만중 같은 행적을 준다. 20세기 주반에는 나치스의 부총통 R 헤스가 갇히기도 한 역사의 심판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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