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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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하이델베르그 5.
5. 독일 합스부르크가家의 위력과 위엄
하이델베르그(Hidelberg) 성(城)은 독일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성이다. 유럽의 문화는 성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城) 안의 성(性) 문화다. 중국의 만리장성 보다 더높고 튼튼한 성벽 속에서 중국의 아방궁보다 더 기묘한 성 놀이를 즐겼다. 독일은 물론이지만 프랑스 영국 등 어디를 가나 산등성이에는 위압적인 성들이 음산하게 둘러쳐져 있다. 아랫동네 서민들은 그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성인 도버 성은 그 지하 비밀 통로가 성의 담벼락을 따라 몇 킬로미터나 되었다. 성을 소재로 한 기괴한 소설들도 많다. <흡혈귀 드라큘라> 얘기 등은 대표적인 것이다. 섬뜩한 지하통로는 성들마다 뚫어놓고 있는데 그것은 20세기의 공산 독재자 루마니아의 차우세스크가 파놓은 것이나 마찬가지 심리이다. 여차하면 튀려고 비밀통로를 마련해 놓았다가 결국 너무 급한 김에 써먹지도 못하고 도망가다가 군중들에게 잡혀 길거리에서 능지 처참된 비극을 우리는 최근에도 목격할 수 있었다. 동서고금으로 인간이 어떤 면이든 극에 치우쳤을 때는 극단적인 행동이 나오기 마련이다. 차우세스크는 밤마다 대통령 궁의 비밀 안가에서 섹스 파티를 벌였다. 심지어는 자기 아들 내외의 섹스 장면도 여러 대신들이(?) 보는 앞에서 실연시킬 정도로 변태가 되었다. 하이델베르그 성은 전 유럽을 지배하다시피 한 합스부르크 가문이 세운 것인데 산골짜기 전체를 성으로 꾸몄다. 독일식으로 육중하고 암울하게 만들었다. 이 골짜기 어느 구석에서 일개 연대 병력을 한꺼번에 몰살을 시킨다 해도 기침 소리 하나 안 들릴 정도로 그저 막막한 성이다. 어느 구석의 창문에서 히틀러의 나치 완장을 두른 팔뚝이 쭉 뻗어 나오거나 괴링의 권총, 헤스의 가죽 채찍이 내 얼굴을 내려칠 것같은 분위기이다. 19세기까지 과거 유럽 귀족들의 봉건적 독재나 20세기 현대의 이념적 독제나그 독재자가 휘두르는 절대 권력은 늘 많은 서민들을 괴롭히고 피흘리게 했다. 그리고 비밀통로를 보유한 그들은 스스로 향유하게 된 사치와 변태에 눈이 멀게 되었다. 그 과욕과 편법은 오늘날 한국에도 비슷하게 반복이 되고 있다. <한보사태>에서 폭로된 1조 몇 천 억의 눈먼 돈은 정치권을 뒤집어 놓았으며, 거기에 연루된 대통령 아들 김현철 씨의 무한 권력은 경제불황 속에 허벅이는 전국민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벽 면의 조각들만 없으면 감옥으로 착각할 정도로 기분 나쁜 하이델베르그 성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나는 앞장 서서 걸었다. 옆에서 열심히 설명해 주던 조 선생은 마주 오던 어느 젊은이와 악수를 하며 잠시 멈춰 섰다. 그 젊은이는 노란 깃발을 들고 있었는데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뒤에는 한국 관광객들이 뇌꼴스럽게 떠들고 있었다. 그는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이렇게 일당을 받고 관광안내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피곤한 모양이다. 늘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말을 되풀이하자니 지겨울 것이다. 한국 관광객들은 얼마전에 일본 깃발 부대들이 깃발 하나에 오리들 마냥 따라 다니며 꽥꽥거렸다. 어느 시골 노래방 사장들을 모았는지 거들먹거렸다. 한바퀴 돌아 옛날의 포도주 공장에 들어가 그 유명한 하이델베르그 포도주를 한잔 마셨다. 그거라도 마시지 않았다면 그날 밤 꿈자리에 히틀러와 안네가 번갈아 나타났을 것이다. 거기에는 시멘트 콤퓨레샤 두 세 배쯤 되는 거대한 포도주 발효통이 있었다. 합스부르크 가에서는 유럽 대륙 전역에 흩어져 있는 친가 외가 씨붙이들이 모이면 이 포도주로 변태의 환락에 빠졌으리라. 합스부르크의 총수가 자기 혈통의 씨붙이들을 유럽의 동서남북 각 지역에 왕자로 공주로 사위로 정략결혼을 시켜 대륙을 호령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오스트리아를 비롯하여 네덜란드 프랑스 헝가리 등에는 합스부르크 왕가 식 건축물이 많다. 밤에 보는 하이델베르그 성은 더욱 기괴했다. 첨단 조명으로 비추이는 그 성은 드라큘라에게 딸을 잡혀 먹힌 어머니가 소복을 하고 슬피우는 울음 소리가 들리는 것같다. 청남색 빛이 주는 소름과 공포는 독일인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것은 그 조명을 <학사주점>의 창 밖으로 내다보면서 조 선생이 들려준 얘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여성들의 권위가 하이델베르그 성보다도 더 높단다. “독일 남성들은 자기 아내들에게 대개가 주눅이 들어서 살지요. 그래서 아예 독신이 많고 그 독신들은 성 해갈을 위해 방콕에 가서 태국 여성들을 사 와요. 인신매매 하는 셈이지요. 그리고는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그는 담배를 도너츠로 만들어 공중에 올렸다. <황태자의 첫사랑> 영화의 촬영장소로 더욱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된 이 <학사주점>의 천정은 이미 관광객들이 떠들썩하게 뿜어댄 담배연기로 먹 구름이 되어있었다. 나도 황태자 처럼 멋있는 술집 아가씨를 만날 수 있을까, 하고 맥주를 가져오는 여자를 보니 돼지 코에 허리가 보이지 않는 드럼통 아줌마가 뒤뚱거리며 거칠게 놓고 갔다. 역시 나에겐 죽으나 사나 그림자 마냥 붙어 다니는 마누라 박에는 없나보다. 한숨을 쉬면서 드럼통의 궁둥이만 바라보자 곁에 있는 마누라가 나에게 상냥하게 맥주를 따르면서 그래서요? 하고, 조 선생의 다음 말을 부추겼다. “잔인하지요. 즈이덜 몇 달 월급에 불과한 돈으로 태국의 시골 여자들을 사와선 밤이면 갖은 짓을 다한답니다. 벌겨 벗겨 가죽띠로 때리기도 하고, 개 돼지 등 갖가지 동물들이 헐레 붙는 자세로 성 체위를 강요하기도 하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그곳에다 희한한 장난도 서슴지 않습니다. 변태지요. 자기 나라 여성들에게는 차마 그런 짓을 못하기 때문에 인도나 동남아 못 사는 여자들을 싼값으로 사 와서 그런 못된 짓을 한답니다.” “그럼 본인이 가만있나요? 경찰에 고발하든지 하면 될 거 아닙니까?” “그런 여자들이 독일어를 할 줄 알아야지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아침에 출근할 때는 방 안 깊숙이 여자를 가두어 놓고는 문을 밖으로 잠가 놓아요. 게르만족의 피가 어떤 피인데요. 그런 정도 모르겠어요? 더러는 여자들이 탈출하여 도망가기도 하는데 가 봐야 어디로 가겠어요. 뮌헨 등 대도시 지역의 사창가로 흘러들어 가게 된답니다.” 사면 벽이 온통 낙서 투성이의 옛 건물 그대로 인 학사주점에는 이곳을 방문한 유명 인사들의 사진도 많았다. 히틀러도 있고 처칠이며 태국의 왕가들 비슷한 사진들도 있었다. 그림 속의 그들은 조 선생의 끔찍한 얘기들을 들으며 무덤 속에서 무어라고 떠들고 있을까? 물론 일부의 독일 남성들 얘기이겠지만 한때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환락가의 인신매매 단이 생각난다. 또한 일본 긴자에 팔려나가는 한국의 여성들도 함께 염려된다. 모 주간지의 폭로에 보면 팔려간 한국 여성들에게 아편을 강제로 먹여 독일 남성들이 하듯 새디스트 적인 학대를 한다고 했다. 일본의 히로히토 천왕과 독일의 히틀러가 2차대전의 패망으로 쑥밭이 되었지만 지금은 또다시 반세기만에 세계의 부자로 급 부상하지 않았는가. 유럽에서의 마르크화는 가장 비싸며, 아시아에서는 엔화가 가장 잘 나간다. 동-서 양쪽에서 그들의 공격성은 다시 은밀하게 칼을 갈고 있을지 모른다. 얼마 전에는 독일의 벤츠 사와 일본의 미쓰비시가 손을 맞잡았다. 여차 하는 순간에는 그들의 막강한 자본과 기술이 세계를 불바다로 만드어 놓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지독한 민족성은 섹스 문제에 있어서도 지독한 공격성을 자랑한다. 아무리 맥주병을 거꾸로 들어도 취하지 않아 하이 스트리트로 나섰다. 네카 강 위로 좁은 다리가 걸려 있었다. 그 입구에는 괴상한 변태성 조각이 얹혀져 있었다. 코끼리 귀에 사람의 코를 얹어 놓았고 그 옆에는 원숭이 손 같은 발, 그 아래에는 발딱 선 불알, 사자의 꼬리 등 인간과 동물을 요상하게 조화시켜 주물러 놓은 동 조각이다. 1천 2백 년이나 변함없이 흐르고 있는 이 네카 강은 인간들의 부질없는 이 과욕과 변태를 알고 있을까. 카르테오도 다리를 지나 골목 사이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헤겔의 발자국을 찾았다. 헤겔이 이 길을 걸으며 사색했다 하여 <철학자의 길>로 명명된 이 계단에서 나는 또 괴테를 생각했다. 그의 연인 빌레머를 해후하면서 소리친 ‘나는 행복했노라.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이’ 라는 소리도 들리는 것같다. 그 옆에 묵중하게 서 있는 독일의 지성과 양심도 찾을 수 있었다. 오늘날 독일인의 이성을 유지시켜 주는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캠퍼스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고 있는 교수들의 연구실과 학생들의 도서관을 바라보면서 독일의 통일과 유럽의 단일 통화를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낼 독일의 최고 학부를 기도하듯 서 있었다. 루프레히트 1세에 의해 1386년에 설립된 이후, 우리의 성균관 대학만큼이나 오랜 6백 여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15세기 루터와 칼빈주의의 종교 논쟁도 이곳에서 주도 되었으며 그 전통은 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내기도 했다. 일부의 변태적 남성이 있는 반면에 다수의 건강한 남성들이 있으며 그러한 건강성 그리고 제3 차 대전의 방지는 이곳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양심들이 감독할 것이다. 나는 청남색의 어두운 불빛 속에는 분명 청녹색의 밝은 색이 받쳐줄 것이라며 차라리 갈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가 보았던 하이델베르그 성 안에 있는 ‘바람둥이 발자국’이 그 빛 속에서 되살아났다. 왕비와 간통하다가 돌아온 왕에게 발각될까봐 2층에서 뛰어내린 신하의 발자국이란다. 그런 전통 때문인지 대학도시인 이 하이델베르그 시내엔 간통 사건도 많고, 밤이면 강간 사건도 많단다. 조 선생은 하이델베르그에서 만하임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올라섰다. 2백 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려야 하는 무제한 구간에서는 2백 이하로 떨어지면 감시 카메라에 잡혀져 나중에 벌금 고지서가 집으로 온다면 그는 악셀을 힘것 밟았다. 조 선생은 만하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기 위해 젊은부부가 여기에 와 있다. 그곳에서 한국유학생협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자기가 유학을 하고 있으면서도 한국 유학생들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물론 도덕적인 면에서 그런 문제점들도 있겠으나 2천년대 한국이 세계로 뻗기 위해선 한국인들이 아프리카 희망봉까지도 파견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