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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동구권의 파리, 부다페스트

신나라 │ 2022-01-14

4.동유럽의 지정학적 운명 (헝가리).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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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부다페스트 7.

7. 동구권의 파리, 부다페스트

신 상 성 (소설가. 용인대)



유럽의 젖줄, 다뉴부(도나우) 강은 유럽인들의 어머니 가슴이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물줄기인 도나우 강인데도 각 나라마다 물맛이 다르다는 점이다. 부다페스트의 물은 탄산수같이 목구멍을 시원하게 간지럽히며 사라진다. 부다페스트 대학 14층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역시 동구권의 파리라고 할만큼 아름답다. 우리는 한잔의 탄산수를 나누어 마시며 유럽 사회주의 국가로서는 첫 방문의 긴장을 달래고 있었다. 도나우 강 물결 위에 유리조각을 만들어 흩뿌리는 강 건너 불빛을 하나씩 헤아리며 인간의 허욕과 허망도 헤아렸다. 나는 동쪽의 불빛을 세기 시작했고, 아내는 하늘의 별빛을 서쪽부터 세기로 했다.

대개의 배낭족들은 빈에서 밤차로 와서 부다페스트에 새벽에 도착하지만 우리는 반대가 되었다. 14:35분 빈 출발 E.C를 탔더니 대개 연착이 되리라 던 유로 열차가 3시간만에 닿은 것이다. 유럽의 국제열차 가운데 ECIC가 쾌적하다. 좌석이 널찍하고 문도 전자식이어서 조용하다. 다만 예약이 문제이다. 국경선을 넘을 때도 차표 검사하듯이 유로 패스와 여권을 내밀면 간단히 스탬프를 찍어준다. 국경 없는 유럽 공동체란 느낌이 새삼 피부로 느껴진다.

그러면서 인간이 만들어 낸 이념과 독재도 생각해 본다. 인간은 꼬리가 퇴화되면서 야성野性이 죽은 것인가, 이성에 매달리면서 꼬리가 죽어간 것일까. 이 세기의 사회주의 이념과 독성을 생각하면서 헝가리를 생각해 본다.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이곳 부다페스트까지는 불과 3시간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뚜렷이 구분이 된다. 이 세기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은 이미 끝났다. 구체적으로 옛 소비에트 연방의 맹주 고르바초프의 사회주의 노선의 포기로 종결된 것이다. 사회주의의 이념과 독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피흘리게 하고 굶주리게 하는가는 바로 이웃인 빈과 부다페스트의 이념 차이에서 간단히 비교가 된다.

동구권의 공산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동양권도 마찬가지이다. 곧이어 세기적인 반환이 될 홍콩과 중국의 GNP 차이가 거의 1백배에 육박한다. 심천에서 홍콩까지는 공항 통로를 걸어서 십여 분 거리이며 같은 민족인데도 이념 차이로 엄청난 생활수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같은 민족으로서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삼팔선 철조망을 단 한 거름에 건너뛰면 바로 북한이다. 남북한 경제력는 차이는 1백배를 넘어 지금 수많은 북한 동포들이 굶어죽어 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지원되고 있는 식량도 판문점을 통하면 금방 올라갈 수 있는 것도 북한에서는 굳이 중국 연변 지역을 돌아 받고 있다.

그것도 <한국>이라는 표식을 없애라느니 하며 갖은 이유와 조건을 내세워 까탈을 부리고 있다. 이념이란 독재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일부 권력층의 사고방식에 따라서 대다수 서민들의 행-불행이 결정되어 진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하고 위험한 것인가. 인간의 야망과 허망은 저 도나우 강의 불빛을 세는 것만큼이나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며, 저 밤하늘의 별빛을 헤아리는 것만큼이나 헛된 짓이다. 우리는 하나아, 두울... 하고 세다가 말고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기로 했다. 다행히 한국에서 태어나 가난한 배낭 여행일망정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인가.

17세기말까지 전 유럽을 호령하던 합스부르크의 여름 별장이 있던 부다지구에는 지금도 부자들이 많고 강 건너 페스트에는 서민들이 많다. 빈에서는 별로 몰랐는데 이곳에 들어서자 하늘을 엎어놓고 칼침을 주듯 교회의 첨탑들이 삼국지의 조조 군사들만큼이나 닫다가 몰려들어서 창끝으로 쑤셔대고 있었다. 그 창 끝에 찔려서 하늘의 별들이 우수수 떨어질 것 같다. 우리는 14층 창가에서 천천히 내려와 근처의 식당을 찾았다. 땅바닥에 그림자 지는 교회 첨탑 끝을 피해 걸으며 맥도날드를 찾았다. 후진국일수록 외국 관광객들에게 바가지가 심하기 때문에 음식과 가격이 확실한 맥도날드 등이 가난한 배낭족들에겐 편하다. 그러나 대우자동차등 오히려 한글 간판들은 의외로 많은데 맥도날드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밤이기도 하고, 공산권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는 위장 속의 노조에서 먹거리를 달라는 항의가 심해 우리의 숙소 근처로 되돌아와 어느 피자 집으로 들어갔다. 영화 속에 흔히 나오는 인상의 뚱보 아저씨가 카운터에서 우리를 째려보았다. 그러자 좁은 홀 안의 손님들도 일제히 우리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아마 그들은 이방인의 침입을 경계하면서 호기심 반으로 동양인들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이리라. 더러는 게다짝 일본인일까, 요즘 호기부리는 한국인일까, 또는 홍콩일까 타이완일까를 가려내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나같이 그들의 눈도끼는 독수리 눈같이 매서웠다. 원래의 헝가리 민족은 몽골의 <>족이 몰려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오면서 게르만화가 되었으며 언어도 독일어권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원어는 마자르어이다. 독일병정 특유의 군대식 무뚝뚝함과 억압감이 부담스러워 우리는 누가 말이라도 걸까봐 고개 숙인 채 피자를 포크 창끝으로 공격하는데만 몰두했다. 희한하게도 피자 맛은 우리의 빈대떡 같이 은근하게 맵고 짭짤했다. 어쩌면 헝가리인들은 우리민족과 같은 핏줄기의 몽골 음식문화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방안에 있는 헝거리인들과 나의 속고쟁이를 벗어보면 삼신할미가 발길로 걷어찬 몽골 반점이 엉덩이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라는 김춘수의 시가 생각난다. 이미 헝가리는 동구권 가운데에서도 1956년 부다페스트의 대학생과 시민들은 가장 먼저 반소-반공을 외치며 비스탈린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소련 탱크가 부다페스트 시내로 진격해 들어왔지만 헝가리인들은 목숨을 걸고 인간의 자유와 자본주의적 개방을 외쳤다. 우리의 유관순마냥 외세에 대항에서 싸우다 간 부다페스트의 소녀를 상징하여 자유의 존엄성과 가치를 김춘수는 외친 것이다. 말을 다스리는 유목민족은 천성적으로 부족성이 강하며 자유롭다. 그래서 칭기스칸은 전 대륙을 통일하여 청 나라를 세우고, 유라시아 대륙을 넘어서 이곳까지 그 유민이 흘러들어와 헝거리 민족이 서게된 것이 아닐까. 동양의 칭기스칸과 대결할만한 영웅은 서양의 알렉산더일 것이다.

 

우리는 어젯밤에 부다페스트 역에서 만나 같이 이 대학숙소에 들어온 김상욱씨 부부와 함께 동굴 탐험대에 끼었다. 우리는 한국의 고씨 동굴이나 중국의 흔한 동굴처럼 그냥 서서 구경하는 줄 알고 신청한 것인데 알고보니 공수부대 지옥훈련보다 더 위험했다. 북 아일랜드 배낭 여대생 등 모두 1십여 명의 일개 분대 병력이 소대장 앞에서 주의사항을 들었다. 헝가리 동굴탐사 동아리의 대학생인 듯한 그 소대장은 껑충하게 마른 키에 혼자 중얼거리며 가방에서 무엇인가 꺼내서 하나씩 걸쳤다. 우리도 그가 던져준 대로 광부들이 입는 나이론 겉옷과 야광등을 머리에 단단히 끼었다.

위장을 해 가려둔 굴 입구의 낡은 자물통을 소대장이 열더니 앞장서 들어갔다. 처음에는 동네 굴 같더니 들어갈수록 험하고 거친 바위굴이었다. 깜깜한 땅 속으로 몇 백미터 씩 한없이 내려가기도 하고 옆으로 끝없이 기어 나가기도 했다. 동서남북으로 함부로 뚫려있는 데다가 어느 지점에서는 머리통 하나 겨우 빠져나가는 바위벽을 뱀마냥 빠져나가야 했다. 앞 사람을 따라 이어져 나가야 하는데 중간에서 막히는 날에는 오도가도 못하고 그대로 모두가 해골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온 몸을 꿈틀꿈틀 대면서 겨우 손가락 한마디씩 빠져나가는 것이다.

내 머리통 위에는 대원 가운데 엉덩이가 가장 큰 드럼통 여학생이었다. 손바닥 하나 겨우 빠져나가는 틈새를 기어오르는 곳이었는데 꽉 끼어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르려고 해도 소리조차 반향이 안 되었다. 그러자 그미는 엉엉 울었다. 앞서간 사람들은 다 빠져나갔는지 소식도 없었다. 중간에서 돌아나갈 수도 없고 후회가 되었다. 다 늙어서 무슨 망녕이람. 머나먼 이국 땅에 와서 어처구니 없게 이렇게 죽는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웃음부터 나왔다. 옛날 제 1공수 특전 단에서 공중 낙하훈련을 받던 생각이 났다. 그 막막한 공중을 맨 처음 뛰어내릴 때의 공포감과 함께 허망함 같은 걸 말이다.

나야 죽어도 괜챦지만 내 뒤에서 죽으라고 좇아오는 아내가 걱정이 되었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위험신호를 보내기도 하고 헬로우!를 연발했다. 그리고 그미를 안심시키려고 아, 이제 다 됐어, 다 왔어 잠깐 휴식 중이야 했지만 역시 불안했다. 한참만에 누군가 그 드럼통을 끌어올리는 소리가 났고 떠드는 소리도 들렸다. 겨우 빠져 나오자 모두들 여기저기 쓰러졌다. 그 드럼통은 눈물 콧물 땀물로 헝크러진 머리카락과 함께 거의 빈사 상태였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그 소대장이 길을 잃은 것이다. 그는 동굴지도를 카바이트 불빛으로 비춰보면서 우리보고는 잠시 기다리라 해놓고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헤매었다. 아마 지하 1킬로미터는 족히 왔을 탄광 같은 땅 속에서 졸지에 미아가 되었으니 모두의 말라깽이 소대장의 노란 눈썹 털만 좇았다.

습기찬 바위,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는 죽음의 동굴 속에서 그것도 이제 절반밖에 오지 않았다니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목숨 건 바위 벽 틈새 빠져나가기를 계속할 판이다. 약혼자 사이인 김씨 부부의 애정을 실험하는 데에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서로의 믿음이 막다른 죽음 앞에서는 마지막으로 어떻게 나타나느냐가 평생을 의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되지 않겠는가. 한때 대한극장에서 누군가가 거짓말로 불이야! 하자 대개 연인사이인 젊은 관객들 가운데 남자들은 대부분 혼자 줄행랑을 쳐서 나왔다고 해서 그 여자들이 등을 지고 돌아섰다는 해프닝도 있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김씨는 도망치기는커녕 공포에 떨고 있는 자기 약혼녀에게 더 잘 보이려고 자기의 헤드라이트까지 벗어서 곱빼기로 껴 주는 걸 보니 다행이다. 하기야 꽉 막힌 이곳에서 자기 혼자 살겠다고 해봐야 별 수 없지 않겠는가. 어쨌든 결국 우리는 두 시간만에 지옥훈련을 마칠 수 있었고 맨 처음 들어갔던 굴 입구에서 기념 촬영까지 할 수 있었다. 땡볕에 지렁이 늘어지듯 뻗어있던 대원들이 사진을 찍는다니까 눈물을 닦으며 발딱 일어나 모여들었다. 모두들 자기 나라의 자존심들은 가죽지갑마냥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동굴탐험에서 돌아오면서 온천 욕을 하기 위해 중간에서 내렸다. 유명한 겔레르트 호텔을 찾아갔더니 하룻밤에 거금 12만원이란다. 호텔급들은 동구권이라해도 비싸다. 돌아서 나와 시내로 구경 겸 어슬렁 거리며 나갔다. 공산주의 냄새가 나는 거리이다. 중국에서 보았던 이중 버스, 살벌한 혁명적 영웅들의 동상들, 무표정한 얼굴들은 월남이나 캄보디아 등 또는 동구권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거리의 냄새다. 암달러 꾼들이 사기 치는 수법도 이들 국가와 비슷하다. 돈을 절반 접어 세거나 가짜 경찰관이 나타나 압수해 가거나 하는 원시적 수법들이다.

지하철에서도 갈아타야 할 길목에 숨어있다가 그냥 타는 외국 관광객들을 사냥하여 몇 배의 벌금을 바가지 씌운다. 부다페스트에는 세 가지의 노선이 있는데 한 장으로는 한군데 노선밖에 탈 수 없다. 갈아타려면 다시 밖으로 나와 표를 다시 끊어야 한다. 이것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지하에서 그냥 바꿔 탄다. 지하철 공무원들은 그것을 사전에 방지하여 안내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잠복 교통 마냥 먹이로 생각한다. 거기다가 문밖의 매표소도 저녁이면 일찌감치 퇴근해 버린다. 공무원들까지 관광객 등을 처먹는 것이다.

내가 중국의 용마병총에서 비디오를 찍다가 비디오까지 빼앗길 뻔했다. 그 안에서는 사진을 찍지 마시오 하는 안내판을 그곳 감시 공무원은 잘 안 보이는 구석에다 감춰 두고는 숨어있다가 외국인들이 촬영을 하면 달려들어 벌금과 함께 카메라 등을 압수한다. 현지 관광 안내원들까지 사전에 주의를 주거나 그런 것이 없고 외국인이 찍기를 기다렸다가 날름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현지 공무원 감시원 경찰관 안내원까지 나중에는 분배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곳을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리고 그 감시원과 함께 관리소장을 만나려고 했더니, 나중에서야 돈으로 달라고 수작을 부려서 할 수 없이 몇 배의 벌금을 문 적이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별일이 많다. 또 이러한 경험이 여행의 별미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런던 다음으로 부다페스트에서 지하철을 뚫었듯이 개방-개혁 정책도 먼저 시작하여 곳곳의 건설공사는 21세기의 헝거리를 예감케 해준다. 우리는 겔레티 동부 역까지 가서 벨기에 호객꾼 대학생들을 만나 KEK 호스텔을 안내 받았다. 그곳은 합스부르크가의 옛성으로 크고 넓었다. 그냥 가면 할인을 안해 주기 때문에 이런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의 접수표를 받아야 한다. 아직은 공산주의적인 관료적 무능률과 무책임이 이런 데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럽의 모든 역들은 하나의 문화센터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는 좋은 안내소이자 휴식처이다. 유럽의 세 가지 보석이라면 흔히 물의 도시 베네치아, 끝없는 들판의 피렌체 그리고 언덕 위의 부다페스트를 꼽는다.

19세기 중반 부다와 페스트 두 지역이 합치면서 부다페스트가 된 것이다. 이때의 통합을 기념하여 클라크 아담이 완성한 최초의 다리가 도나우 강 한복판에 첸교Szechenyi Lanchid라는 이름으로 서있다. 부다페스트는 180여개의 온천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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